영국 스파이로 변신한 이란 스파이의 이중 생활
지난 1월 이란은 10년 동안 이란의 핵 및 군사 프로그램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영국에 제공한 전직 고위 관리 알리레자 악바리를 처형했습니다. 이 폭로를 통해 이란 내부자이자 영국 스파이로 살다가 교수대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악바리의 이중 생활이 밝혀졌습니다.
이란의 고위급 첩자
2008년 4월, 영국의 한 고위 정보 관리가 이란의 핵 및 국방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고위급 첩자가 이란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측에 폭로했습니다. 이 첩자는 이란의 핵무기 추구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고 전 세계가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를 가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귀중한 정보를 계속 제공했습니다.
스파이의 정체
1월에 아크바리가 처형될 때까지 스파이의 신원은 비밀로 남아있었습니다. 대중에게 그는 종교 광신자이자 정치 매파인 동시에 혁명수비대의 고위 군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2004년부터 그는 이란의 핵 기밀을 영국 정보기관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발견 및 체포
악바리의 활동은 2019년 이란이 러시아 정보 당국의 도움을 받아 그가 테헤란 인근에서 이란의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한 사실을 발견할 때까지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악바리가 자국의 핵 및 군사 기밀을 폭로하고 100명 이상의 관리, 특히 2020년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된 수석 핵 과학자 모흐센 파크리자데의 신원과 활동을 공개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아크바리에 대한 영국의 입장
영국은 2012년에 영국 시민이 된 아크바리를 스파이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정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랜 정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악바리의 흥망성쇠
처형 당시 62세였던 알리레자 악바리는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광신적 충성심과 지도자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란 정부 내에서 그의 지위는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스파이로 포섭된 후 이어진 첩보 활동은 결국 그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동기와 행동
아크바리의 행동 동기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비디오 자백에서 자신이 "탐욕과 권력"에 이끌렸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BBC 페르시아어 방송의 오디오 메시지에서 자백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은 아크바리가 국가를 배신하고 국가 기밀을 돈과 거래했다고 비난하는 반면, 그의 가족은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동영상에 담긴 많은 주장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란으로의 최종 귀환과 처형
2019년, 아크바리는 긴급한 핵 및 국방 문제로 최고 국가안보회의 수장의 소환을 받고 마지막으로 이란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차례의 심문 끝에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1월 이란은 아크바리가 스파이라고 발표하고 그를 처형했습니다. 이란에서 고위 관리의 사형은 극히 드문 일로, 1982년에 마지막으로 고위 관리가 처형된 바 있습니다.
여파
영국은 아크바리를 처형한 테헤란을 비난하고 대사를 잠시 소환했으며 이란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테헤란에서 추도식을 열 수 있었지만 이슬람 공화국을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친구, 동료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족들만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